아이들과 동행이 많아지니 아비뇽에서 시간을 꽤 오래 보냈다.
여러 가족이 함께 여행가거나, 아님 친구 둘이 가더라도 지향이 다르면 중간중간 따로 다니는 시간도 좋다는 주의다.
오후가 되었는데 우리는 그래도 최소한 고르드와 루씨옹(불어를 몰라 발음은 잘 모르겠으나, 구글맵에는 고흐드, 후쓸리용 이렇게 표기한다. ㅎㅎ)은 들렀다 갈 참이었다. 아비뇽에서 가깝기도 하거니와, 엑상프로방스로 돌아가는 방향에 있고, 인터넷 정보에 의하면 지금은 라벤더 철이라 근처에 라벤더 밭들이 멋지다고! 우리는 갈 것인데 선배네 의향을 물으니 선배형은 가봤지만 다른 가족들은 안가봤으니 들렀다 가자 하여 이번에도 같이 이동.
아비뇽에서 고르드까지는 거리는 40여km이나, 고속도로가 아니라 50분 정도 걸린다.
하지만 오히려 고속도로가 아니기 때문에 풍요롭고 아름다운 남프랑스 전원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 탈 것으로 지나다닌 길 중에 가장 아름다운 풍경들이었다.
뭐 뒷자리에 앉은 yeon이 건져준 사진은 거의 없지만 말이다. -_-;
하지만 아쉽게도 라벤더는 이미 수확이 끝난 모양이다.
6월말부터 7월말까지 절정이라는데, 예년에 비해 무더운 폭염 때문이 아닐까 추측된다.
아주 일부분 남아 있는 라벤더를 잠깐 보았고, 라벤더 밭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휑한 밭을 몇군데 지나가며 보았다.
사실 프로방스의 라벤더에 대해 알고 온 건 아니지만, 나름 장관인 것 같은데 아쉽긴 하다.
고르드를 향해 가다 보면 이런 고르드 전경을 볼 수 있는 포인트가 나온다.
사실 이곳이 고르드를 가장 멋지게 보여주는 곳.
마을 안에도 들어가본 선배형 의견에 따라 그냥 마을 구경은 skip하기로 하였다.
나중에 고르드 마을 사진들을 찾아 보아도, 이후 방문한 다른 예쁜 마을들에 비해 특별해 보이진 않아 안들른 것이 아쉽진 않다.
이 포인트 근처에 차들이 많은데, 때마침 차댈 곳이 생겨서 잠시 차를 대고 경치 감상.
덥긴 해도 날씨도 좋고, 사방이 탁 트여 있다.
다음으로 우리는 고르드에서 10km쯤 떨어진 루씨옹에도 들러 갈 거라 했는데, 선배형도 안가본 곳이라고 잠시 같이 들러가기로 하였다. 고르드 마을 아래쪽에서 올려다본 모습.
나중에 보니 아비뇽에서 고르드-루씨옹의 방향은 엑상프로방스 방향은 맞는데, 길이 마땅치 않아 엑상프로방스로 가자면 상당히 돌아가야 했다. 결국 아비뇽에서 엑상프로방스나, 루씨옹에서 엑상프로방스나 시간은 비슷하게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간도 역시 황홀하게 멋진 길들이 많아, 가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
렌트로 운전을 하면 구경을 잘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지만, 지나고 나면 내가 운전하고 다닌 길들이 훨씬 더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물론 길위에서의 사진들은 놓치는 게 많지만... -_-;
루씨옹은 특히나 작은 마을인데, 오크르라는 노란색 안료의 원료가 되는 황토의 산지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렇게 노출된 토양의 색깔들이 독특하다.
특별히 보아야 할 것이 정해져 있지도 않은데, 마을 입구에서 150미터만 가도 있다는 전망대에도 가보지 못했다.
한 아비가 아이를 업으니, 다른 아이의 아비가 업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ㅋㅋㅋ
전 인원을 통틀어 가장 '더 가보자!'를 외칠 내가 힘이 빠져 그냥 적당히 둘러보다 돌아오는 것으로. 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의 오크르를 사용한 안료로 칠해졌다는 이 마을의 집들의 색깔은 참으로 아름답다.
얼핏 보면 칠도 군데군데 벗겨지고 더렵혀지고 그냥 낡은 옛날 칠 같은데, 이 황토색은 표현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보아도 보아도, 또 감탄스럽다.
그 색깔의 스펙트럼은 꽤 넓어서, 이 붉은색 계통의 칠들도 마찬가지다.
빛에 따라 색은 더 다양하게 달라 보인다고 하는데, 파란 하늘에 뜨거운 프로방스의 태양이 약간 기울어져가며 내리쬐는 지금이 최고의 색 아닐까? 나는 오로지 이 때 밖에 못보았지만, 왠지 틀림없이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루씨옹에서 찍은 사진은, 그야말로 '그림 같다'.
루씨옹의 거리를 걸어본 것은 그림속에 실제로 들어가본 것과 같은 경험이다.
돌아오는 길에선 네비가 좀 말썽을 부려, 선배네 앞차를 놓쳤다.
차에 내장된 네비와 받아간 네비가 알려주는 길도 제각각이고, 이래저래 작동 실수도 있었고 헤매었지만, 그 또한 여행 아닌가.
다니는 길마다 아름답고, 풍요롭다.
잘 되어 있고 편리하긴 하되, 재미없는 고속고도로까지 한참만에 도달한 건 오히려 다행이다.
다만 이 멋진 숙소에서 보낸 시간이 좀 줄어든 건 좀 아깝지만 말이다.
저녁이 다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수영할 수 있을만한 온도와 햇빛.
선배네 차를 타고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Kiwi도 같이 수영을 하고 있었다.
겁도 많은 녀석이, 나와 달리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별 스스럼이 없는 건 참 복이다 싶다.
늦게 도착해 나도 같이 들어가 논다. Kiwi의 용기를 북돋아 이런저런 잠수놀이에 도전하고 있는 중이다.
수영까지 하고 나니 조금 늦은 시간인데다 일요일 저녁인데 이번엔 좀 제대로 와인을 살 수 있을까?
엑상프로방스 시내 쪽으로 나가보았는데, 처음 발견한 주유소에 딸린 편의점에서 와인을 팔았는데, 몇시 이후라고 판매할 수가 없다고 한다. 하와이에서처럼 여기서도 뭔가 규제가 있는 모양. 시내로 가면 파는 곳이 있을거라 알려주어 엑상프로방스 시내로 들어갔다. 주류를 주로 판매하는 집을 찾긴 했으나, 안타깝게도 여전히 20유로 넘는 와인은 두어 종류 밖에 없다.
사실 엑상프로방스 시내를 구경한 것은 이때 와인 찾아 헤매던 때가 거의 전부다.
그런데 사실 뭘 보러 와야 할지 감이 안잡히는 도시였다. ㅎㅎ
이날은 수영장 옆 야외가 아닌 거실의 넓은 탁자에서 대화와 와인과 맥주.
그리고 대화 중간중간 밖에 나가 또 별들을 찾았다.
날도 어제보다는 좀 흐리고, 아주 많은 별들은 아니었지만, 오늘도 어제처럼 깊은 인상이 남은 행복했던 밤.
별 대단한 얘기들을 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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