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1일.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바로 체크아웃 후 제노바에서 니스까지 기차를 탔다. 3시간 정도 거리.
제노바를 기준으로 동/서 리비에라가 나뉜다고 하니, 차창 밖의 풍경은 서리비에라다.
기차도 해안가를 따라 가니 수많은 바닷가 마을들이 보이고, 해변이 있는 곳은 어디나 많은 사람들이 있다.
생각외로 기차가 만원이라, 다른 때처럼 우리가족이 네자리를 차지하고 갈 수는 없었으나, 남은 한 자리에 앉은 이탈리아 할머니는 교양있고 친절하여, Kiwi에게 먹을 것도 주고, 그림 그릴 종이와 펜도 빌려줬다.
니스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국경에서 금방이다.
선배네 가족들을 만나기로 한 곳은 엑상프로방스 근처이나, 어차피 기차도 갈아타야 하고, 우리가 비행기로 떠날 곳이 니스이기 때문에, 니스에서 차를 빌리기로 미리 예약해 두었다.
니스에서 차를 빌리는 곳은 기차역이 아니라 바닷가에 가까운 르 메르디앙 호텔 근처였다.
가면서 사람 많은 거리가 나왔는데 알고 보니 마세나 거리. 거리에서 적당히 사람 많은 곳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맛과 비주얼 모두 이태리에 비해 확연히 떨어졌다. -_-;;
오늘 저녁에 마실 와인을 사가기로 했는데, 가는 곳마다 별로 괜찮은 와인들이 없다. 20유로 넘는 와인을 찾기가 힘들다.
차를 빌리는데 우리가 분명히 오토로 예약했음에도 수동으로 하면 더 큰 차를 준다고 회유한다. 오토여야 한다고 하니 그럼 현재 차를 청소중이라 3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우리가 받기로 예약한 시간보다 더 늦게 갔는데도 말이다. 예약은 뭐하러 받나 모르겠다. 그러면 가격을 깎아주거나, 반납 시간을 늦춰주거나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말이 잘 안통하니 따지지도 못하고 그냥 기다리는 수 밖에. 그래도 제법 큰 업체라 업무는 깔끔하고 친절한 편.
우리가 받은 차는 Renault Clio, 이번에도 디젤.
별로 빨리 달릴 일이 없던 이태리에서와 달리, 니스에서 엑상프로방스까지는 거의 고속도로다.
가다 잠시 휴게소에 들러 잠도 깨고 휴게소도 구경하고, 보통 가게에선 마시기 힘든 '아이스' 커피도 샀다.
나라마다 다른 휴게소 풍경 구경도 재미있다.
프랑스는 독일에 비하면 휴게소가 덜 자주 있는 반면, 규모는 훨씬 큰 편.
뭐 내가 본 구간들 사례이니 일반적으로 그런 건 아닐 수도 있다.
드디어 엑상프로방스 근처의 숙소에 도착!
선배네 가족은 이미 어제 와서 3박 묵고, 우리는 여기 얹혀 2박을 같이 보내기로 하였다.
일단 차가 없으면 거의 오기 힘든 호텔.
높은 빌딩으로 된 도심의 특급호텔이 아니라, 전원에 위치한 조용하면서도 꽤 호화로운 호텔이다.
뭐 스탠다드 룸이라면 우리도 묵을 수 있는 수준인데, 문제(?)는 방 3개에 작은 수영장이 딸린 2층짜리 독채를 빌린 것.
대략 보니 이곳의 1박 가격은 통상 우리 여행 숙소 예산의 6배 정도 수준? 두 집인걸 감안해도 3배 수준! ㄷㄷㄷㄷ
선배네가 통이 큰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예정보다 조금 늦게, 거의 오후 5시쯤 도착했던 것 같은데, 일단 수영장을 보고 Kiwi와 물놀이 하러 풍덩.
이 숙소에 와보고서, 프로방스 근처의 여행 계획은 대폭 축소해야겠다고 느꼈다.
이 정도라면 숙소를 즐기는 게 더 남는 여행이다. ㅎㅎ
고맙게도 숙소는 부담하시겠다 하니 우리는 식사나 와인 따위를 대접하기로 했지만서도 뭐 약소하다.
근처에 Lidl이라는 마트가 있어 장을 봐왔다.
독일계 유통회사라는데, 약간 코스트코와 비슷한 전략을 가진 듯? 물건 종류가 아주 다양하지는 않지만 양질의 물건들을 싸게 공급하는 식인 것 같다. 문제는 와인인데... 이곳에도 20유로 넘는 와인이 1,2개 정도 뿐. -_-;; 와인이라도 좀 고급으로 대접할랬는데, 살래도 살 수가 없다. 니스에서부터 쭉 봐왔지만, 와인 전문 매장이 아니면 마트 등에서 비싼 와인은 구하기 힘들다.
저녁은 럭셔리한 분위기에 맞게 신라면과 햇반과 김.... -_-;;;
심지어 이것들도 영국에 살고 있는 선배네가 가져왔다. ㅋㅋ
영국에서 파는 신라면에 할랄 인증이 있는 것이 특이했다.
내가 와인잔을 하나 깨는 참사가 일어나긴 했지만, 얼른 치우고 유럽에서의 만남을 축하하는 자리를 야외에서 가졌다.
선배네 가족의 딸은 Kiwi보다 세살 위, 새침한 편이기는 하지만 착하고, yeon의 적극적인 중재와 Kiwi의 넉살(?) 등이 어우러져 그럭저럭 잘들 놀았다.
물론 여기서 20유로 와인은 한국에 오면 상태는 나빠지면서 가격은 3배 정도 뛰니까 제법 먹을 만은 하다.
프로방스는 로제 와인이 유명하다는데, 호텔에서 준 것은 특별히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이렇게 마시며 얘기하며, 결국은 어두워지고 별도 보이고.
고흐의 별빛도, 알퐁스 도데의 '별'도 프로방스의 것이었지.
좋은 사람들과 밤늦게까지 별을 보면서 얘기할 수 있다는 것, 대학교 시절 이후 한번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얼마만의 일일런지. 서울에서 1년에 한번 정도는 만나 먹고 마시고 얘기하는 것도 충분히 행복한 일이지만, 장소와 시간의 제약이 훨씬 덜한 이날의 즐거움은 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솔직히 숙소가 너무 비싼 것 아닌가 했던 생각이, 아주 가끔이라면 한번 지를만 한 것 아닌가 싶어졌다.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