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3일.
불행히도 카파도키아 지방에 머무는 동안 일기예보는 내리 비로 되어 있다.
도착한 밤부터 비가 약간 왔고, 어제는 괜찮은 편이었는데, 다행히 오늘도 비는 안온다.
새벽 5시경 벌룬투어 참여자들을 실으러 버스가 호텔 앞으로 왔다.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호텔이라 내가 제일 먼저 타고, 버스가 호텔들을 돌며 사람들을 태운다.
아직 깜깜한 새벽. 바람 방향이 바뀌느라 가장 잔잔한 시간인 해뜰녘에 벌룬 투어는 시작된다.
기구들이 뜰지 안뜰지의 여부는 정부에서 결정한다고 한다. 누군가 풍선을 위로 날려서 얼마나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지 보던데, 그렇게 보고 결정하는 것 같다. 뜨면 모든 회사의 기구가 뜨고, 아니면 다 못뜬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먼저 뜬 기구들이 있어도, 도중에 바람이 세졌다고 판단되면 그 이후에는 못뜨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어지간한 투어보다 매우 비싼 편이고, 과거 몇건의 사고도 있었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꽤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 같다.
파묵칼레에서의 사고도 아마 착륙시에 갑자기 강풍이 불어 바구니가 넘어지며 착륙한 것 같다.
기구간 충돌이나 착륙시의 강풍만 아니라면 기구는 크게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
둘다 바람에 달려 있다.
투어객들의 호텔은 물론 신청한 벌룬 투어 회사도 제각각 이지만, 모두 몇군데의 거점에 모인다.
버스는 벌룬 회사별로 태우는 것이 아니라 호텔별로 태운다.
그리고 한곳에 모여 모두 같은 빵과 커피를 받아 아침으로 먹는다.
벌룬들이 부풀어 오르면 목청 쩌렁쩌렁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아저씨 하나가 마이크도 없이 이 많은 사람들을 각각 탈 벌룬 별로 헤쳐모여 시킨다.
악천후일 경우에는 아예 이렇게 모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뜰 가능성이 있으면 일단 모이는데, 이날은 바람이 좀 셌나보다.
꽤 오랜 시간 대기하였는데, 결국 못뜨는 걸로 결정났나 보다.
다음날 뜰 때는 대기시간은 짧고 금방 뜬 걸 보면, 대기시간이 길어지면 별로 안좋은 징조라고 보면 될 듯.
셀축에서 만났던 언니 한명은 4~5일 허탕치고 겨우 탔다던데, 매우 드문 경우라고.
2~3일 정도면 왠만하면 거의 탄다고 하지만, 운은 그야말로 하늘에 달려 있다.
새벽부터 일어나 부산 떨고, 은근 긴장한 것이 좀 억울하긴 하지만, 안전을 위해서라니 안뜨는 것이 다행이다.
나는 아빠다. 안전 제일!
다시 숙소로 돌아와 조금 쉬다가, 오늘은 아침 9시부터 그린 투어다.
투어 대신 렌트도 고려하였었으나, 역시 혼자서는 너무 비싸다.
그렇다고 현지에서 만난 여행자들에게 제의해서 같이 팀을 이루기에는 좀 번잡스럽다.
내가 빌려서 호의로 태워주는 거면 모를까.
그래도 혹시 몰라 일단 신청한 것이 그린 투어.
벌룬을 제외하고 대부분 여행객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것이 그린 투어다.
대중교통으로 다니기 어려운 곳들을 포함하고, 가장 멀리까지 다니는 일정이며, 으흘라라 계곡 트래킹 처럼 시작과 끝지점이 달라 렌트를 하면 좀 불편한 일정들인지라, 렌트를 하더라도 왠만하면 그린 투어는 하고 그 다음날부터 렌트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만일 바이크나 스쿠터로 다닌다? 그래도 그린 투어의 목적지들은 너무 멀다.
나중에 뭘 하더라도 그린 투어는 괜찮은 첫 일정을 소화해주는 듯.
업체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첫 방문지는 괴레메 파노라마였다.
괴레메에서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 내려서는 가이드가 약간 설명하고 사진찍을 시간을 준다.
비슷한 곳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는 셈이라 어제 호텔 근처에서 본 풍경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이곳은 트인 곳에서 보는 것이라 변화가 없는 반면, 호텔 근처는 언덕길 걷는 것도 좋고 걸어다니면서 풍경이 변화무쌍하게 바뀌어 더 좋았다.
이곳은 이름도 붙어 있으니 사람도 많고, 이것저것 파는 상인들도 있다.
대신 어제는 까마득히 멀리 보이던 우츠히사르가 꽤 가까이 보인다.
다음 목적지는 데린쿠유 지하도시.
구름이 많아도 하늘이 파랗고 이런 뭉게구름이라면 환영이다.
안탈리아를 비롯한 남부 해안지방보다는 확실히 춥다.
그리 높지 않아 보이는 곳도 아직 눈이 남아 있다.
데린쿠유 지하도시 입구다.
위에서만 봐서는 아래 뭐가 있는지 알 길이 없지만, 가이드가 철조망 쳐진 곳을 보여주는데 그곳이 지하도시에 환기구명이라고 한다.
지하도시들은 시기, 용도, 거주 인원 등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아 추측일 뿐인 것도 많다.
히타이트 때부터 비잔티움 시대까지 30여개 이상의 지하도시가 만들어 졌다는데, 아마도 상시적인 생활 공간이라기 보다는 이민족 등의 침입시 숨어서 지내는 용도로 사용되었을 거란 추측이다. 그중 대표적인 데린쿠유는 55미터 깊이에 지하 8층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데,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5천여명 정도가 길게는 몇달간 생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곳 저곳 공간들의 용도에 대한 설명도 해주는데, 명확하지 않은 부분은 가이드가 이런저런 설과 자신의 생각을 얘기해준다. 식량 저장고는 물론이고 교회나 학교 같은 곳도 있다.
폐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몇몇 곳에서 괴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숙여야 하는 이런 좁고 긴 계단을 줄지어 내려가다 보면 보통 사람들도 조금씩 괴롭다.
중간에 어떤 계단은 꽤 긴데 구불구불해서 앞이 안보이고 좁아서 일방통행이라, 단체 관광객들이 줄지어 가다 중간에 마주치면 낭패다. 그럴 땐 가이드들이 큰 소리로 다 올라왔냐~ 우리 내려간다~ 뭐 이러면서 인솔한다.
지하도시에서 나와 다시 차를 타고 셀리메 대성당으로 향한다.
워낙 많은 문명과 여러 종교들이 지배했던 곳이기에, 터키의 유적들은 시대와 문명을 짐작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카파도키아에서는 더욱 그렇다.
얼핏 보면 선사시대 유적 같은데 '대성당'이라니.
하지만 들어가보면 과연 성당은 성당이다.
기둥도 있고, 훼손되었지만 천장 프레스코화도 있다.
다만 돌을 가져다 세운 것이 아니라, 기둥 조차도 파내어서 모양을 만들어둔 것 뿐이란 점이 차이다.
수도원을 겸하기 때문에 단지 예배당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과 교육을 위한 공간들도 많이 있다.
사실 파묵칼레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리 단단하지 않은 재질로 된 이러한 유적들에 사람들이 마구 출입하게 해도 괜찮은걸까 싶은 생각도 든다. 아주 높은 곳까지 방같은 것들이 있기는 한데, 못올라가는 곳도 있지만 비교적 안전한 곳은 대부분 올라가 들어가 볼 수 있다. 셀리메 대성당도 신기하게 생겼지만, 대성당에 올라서 보는 풍경도 신기하긴 마찬가지.
왼쪽에 솟은 바위도 안에 공간이 있어 사방을 조망할 수 있다.
성당에서 나와서는 차를 조금 타고 가다 식당에 들른다.
투어에 모든 입장료 뿐 아니라 점심 식사도 포함이라 좋다.
치킨, 생선, 야채 등 몇가지 옵션이 있고, 음료수는 별도 주문.
나는 해산물 먹은지 오래된 것 같아 생선으로 주문했는데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다시 차를 타고 조금 가서 으흘라라 계곡에 도착.
3~4km 정도의 짧은 트래킹 코스다.
일단 계단으로 내려가면 계곡을 따라서는 거의 평지라 부담은 없다.
이곳에도 곳곳에 교회와 동굴 유적들이 있다.
비교적 상태가 좋았던 계곡 입구 근처 교회의 천장 프레스코화.
웅장할 정도까지의 느낌은 아니었다.
사진으론 크기 가늠이 안되지만 상당히 큰데,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 있어 약간 오싹하다.
코스의 2/3 이상 가면 가이드가 '으흘라라의 스타벅스'라 칭한 곳이 나온다.
터키 어디서나 경치 좋은 곳에 국기가 빠지면 서운하다.
계곡가에 평상 펴놓고 차나 커피 한잔, 했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왠지 가이드 따라 온 가게에서 돈을 쓰면 아까운 느낌? 당시에는 전혀 끌리지가 않아서 그냥 주변 구경하다 계속 이동했다.
이곳의 동굴 유적들에는 대부분 비둘기집이 많다. 멀리서 보면 사람들 드나드는 곳 위쪽에 벌집처럼 보이는데, 땅이 척박해 비둘기 배설물을 받아다 거름으로 쓰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저녁 6시까지 이어질줄 알았던 투어는 생각보다 일찍 끝나가고 있었다.
우츠히사르 근처로 돌아와 보석 공예 가게 구경을 한다.
물론 판매 목적이지만, 특별히 압박감을 주지는 않는다.
유난히 파란 터키의 터키색과, 조명에 따라 갈색에서 녹색으로 변하던 이름 모를 보석이 인상적이었는데, 모두 만만치 않은 가격들인데다 품질에 대한 기준과 가격에 대한 감이 없으니 선물용으로 작은 것도 선뜻 사기가 어려웠다.
투어가 끝나 호텔에 내리니 5시가 약간 안되었다.
편하게 다니는 것은 좋은데, 긴장감이 전혀 없으니 같은 것을 보아도 역시 투어는 재미가 덜하다.
숙제를 해치운 느낌?
숙소에서 잠깐 쉬다가, 한국 여행객들 사이에 가장 유명한 항아리 케밥집에 왔다.
과연, 오늘 투어에서 같이 다녔던 한국 여행객들도 다시 만났고, 다른 두 테이블에도 한국인들이 앉아 있었다. ㅎㅎ
치킨 항아리 케밥을 시켰는데, 나쁘진 않지만 메뉴 선택이 별로였는지 난 어제 호텔에서의 항아리 케밥이 더 맛있었다.
방에 돌아와서, 벽난로를 피웠다.
혼자라서 분위기는 좀 덜 나지만, 아직 날씨도 꽤 쌀쌀하고 장작도 매일 그냥 채워주니 좋다.
호텔측에서 이미 잔가지와 두꺼운 장작들을 잘 배치해 두어서, 아래쪽에 불만 붙이면 비교적 쉽게 큰 장작까지 잘 탄다.
내일은 벌룬 투어 재도전 이외에는 일정이 아직 없어서 가이드북을 좀 보다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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