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7일.
어제까지가 출장에 가까웠다면 이제 진짜 여행다운 여행이 시작되었다.
결혼하고 Kiwi가 태어난 이후에도 출장이나 교육 등으로 혼자 나와 있은 적은 꽤 있지만 대부분 일주일을 넘기지는 않았는데, 이번엔 3주를 떠나있으면서, 순전히 혼자 여행 기간만도 16일이다. 생각해보니 3주의 여행은 1996년 4주간의 유럽여행 이후 최장이다. 거의 20년만의 시간! 올해는 여러가지로 인생에 쉼표같은 기간이다. 남은 시간들도 더 잘 보내야 한다.
아침부터 체크아웃하고 국내선들이 주로 출발하는 사비하괵첸 공항으로 향했다.
끔찍한 이스탄불 시내 교통을 겪어본데다 정체로 약명높은 보스포러스 대교도 통과해야 해서, 배를 타고 카드쿄이로 가서 공항으로 가야 하나 고민을 좀 했었는데, 터키인들이 토요일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지는 않을 것 같은 예감으로 그냥 하바쉬를 탔다. 예상대로 일주일 동안 머무는 동안 차가 이렇게 없는 날은 처음 봤다. 전날 같은 공항으로 간 친구들은 2시간도 넘게 걸렸다고 했는데, 나는 50분도 안되어 도착했다. 예상외로 일찍 도착한 공항에서, 단단히 잘못 주문한 비싸고 맛없는 아침식사를 간단히 하고, 1시간여를 날아서 안탈리아에 도착.
안탈리아에서 카파도키아행 비행기를 탈 이즈미르까지는 렌트카 여행이다.
해외에서 렌트는 이번이 세번째인데, 작년 하와이 갈 때 만든 1년짜리 국제면허증을 재활용할 줄이야.
'사소한' 문제가 있었는데, 공항에서 내가 예약한 렌트카 회사(Fox rent-a-car)는 사무실이 안보이더라. 그래도 나가보니 한 친구가 알아서 다가와서 나를 데려갔다. 문제는 나는 오토를 예약했는데 아저씨가 수동을 가져온 것. 예약한 내역을 들이밀었는데 한글이라 못알아먹겠다고 자기네는 오토 없다고 이거 그냥 가져가랜다. 뭐 수동 운전 할라면 할 순 있겠지만, 신혼여행 때도 호기롭게 수동으로 했다가 하도 오르막이 많아서 결국 GG 치고 오토로 바꾼 경험이 있다. 안그래도 운전 환경 낯선 곳에서 한참 안하던 수동 운전은 버겁다. 게다가 오토 비용을 냈는데 수동을 가져가라니, 이럴 때 없다는 말 믿고 그냥 받아가면 호구 인증이다. 아저씨는 몇번이고 자기는 오토 없으니 이거 가져가라, 네비도 주겠다 하지만, 나는 됐다 죽어도 못한다 배째라 버텼다. 최악의 경우 성수기도 아니고 그냥 이거 무르고 다른데서 오토를 받아가도 된다. 게다가 나는 이즈미르에서 반납한다고 예약 했는데 그것도 처음 듣는 눈치다. -_-;;
그러고 있으니 결국 아저씨가 자기가 공항까지 끌고 온 오토 차량을 내주겠다 한다. 머야. 자기가 오토 몰라고 나한테 수동 몰라고 한거임? 암튼 나한테 주기로 했으나, 차량 반환을 위한 결제를 위해 자기 사무실까지 가야 한다고, 같이 타고 갔다. 공항에서 멀진 않았으나 가서 결제를 하는데... 뭐야 반납 비용이 왜이리 비싸! 렌트 비용이 하루에 3만원 남짓이라 할만하다고 판단해서 지른 건데, 반납 비용이 5일간 렌트 비용에 맞먹는다. @$#%#$$&#$%%ㅃ#$&@ 사실 사이트에서 반납 비용을 유로로 알려줘서 확인을 하긴 했었는데, 거기에 20% 세금이 붙고, 유로를 tl로 바꿔서 결제하려니 확 비싸진 느낌이었다. 그때까지 대략 터키리라는 500원 좀 안되고, 유로는 천원 약간 넘으니까 유로는 tl*2 하면 되려니 생각했었는데, 실제로는 2.8배, 그러니까 3배에 가까왔다. 그러니 유로로 듣던 금액을 tl로 말하니 깜짝 놀랄 수 밖에. 이제 와서 안한다고 할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결제하고 나니 갑자기 가난해진 느낌. 그제서야 유로 환율 개념을 다시 잡고, 그 여파로 이후로 묵은 곳들은 점점 누추해진다. ㅋㅋ
암튼 그러고 나서도 또 한 실랑이가 있었다. 차에 딸려있는 네비게이션 옵션을 하라고. 난 됐다고, 그래도 막무가내로 얼마 있냐고, 있는 것만 주고 쓰라고 강권. 끝까지 필요 없다고하니 그냥 갔다. 그래서 아저씨가 가고난 다음, 나는 기왕 있는 거 써볼까 하고 차량에 있는 거 조작해보고 있으려니 아저씨 다시 온다. '그봐 쓸거잖아. 얼마 있어?' '그거 비싸서 일부러 한국에서 오프라인 네비게이션 프로그램도 다운받아 왔고, 스마트폰 거치대와 충전기까지 싸왔거든?' 다 보여줬다. ㅋㅋ 아저씨도 징하지만 나도 지지 않는다. ㅋㅋ 아저씨 결국 GG 치고 퇴각. 게다가 그 네비게이션은 나중에 안탈리아를 벗어나자 지도가 제대로 없었다. 돈주고 빌렸으면 배로 억울했을 뻔.
실랑이가 끝나자 미리 예약한 호텔로 네비게이션 설정하고 출발.
아 이제야 진짜 여행 시작하는 느낌!
게다가 안탈리아는 왜이리 멋진가.
날씨도 너무 좋고, 이스탄불처럼 칙칙한 느낌이 없다.
(사실 이스탄불엔 구걸하는 이들도 많고 다니는 마음 무겁게 하는 구석이 많다.)
안탈리아는 쨍한 날씨에 가는 길마다 여유가 넘쳐 보인다.
차량 반납 비용을 고려 안하고 하루에 50유로 쯤이야 하고 예약한 Hotel Metur의 싱글룸.
이날 이후부터 내가 묵은 방의 가격은 35유로, 25유로, 15유로로 점차 줄어든다. ㅋㅋ
암튼 그래도 이날은 나름 업그레이드도 해줬다.
엘리베이터 문을 손으로 밀어서 여는, 오랜 유럽식 건물이다.
와~ 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조금이라도 바다가 보이는 전망.
렌트카 문제로 시간이 좀 지체되었다.
호텔에 체크인 하고 짐 두고 나오니 3시가 넘었다.
하지만 여행에서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서울에서 서너시면 그냥 남은 두어시간 인터넷 좀 하다 보면 그냥 하루가 접히는 시간이기 십상이지만, 여행에서 오후 3시면 일생의 기억이 생겨나기 충분한 시간이다.
시간의 밀도가 다르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근본적인 이유.
안탈리아의 주요 관광지인 구시가지에서 약간 떨어진 숙소.
구시가지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이스탄불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철이 있었다.
이스탄불의 트램이 서울의 지하철처럼 절실한 생활 이동 수단에 가깝다면, 안탈리아의 전차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서울대공원의 코끼리 열차 같은 느낌이다.
아무튼 안탈리아는 어느곳이나 여유가 넘쳐 보였다.
내가 겪어본 어느 도시보다도 호객이 심했던 이스탄불에서 바로 왔으니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3월의 이스탄불은 한가지 색으로 말하자면 회색이었지만, 안탈리아는 이미 초록이었다.
어느 시절의 유적인지도 모를 것들이 어느 곳에나 널려 있는 것이 터키.
다른 종교, 다른 문명, 다른 문화가 켜켜이 쌓여 있다.
호텔에서 칼레이치, 즉 구시가지 쪽으로 가자면 거치게 되는 카라알리오울루 공원.
보시다시피 바다, 그리고 건너편의 산세가 인상적이다.
현지인들이 더 많아 보이는 곳이다.
가족들, 연인들, 친구들.
좀더 가면 구시가지가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관광객들도 많고, 한국 단체 관광객들도 한두 팀 보였다.
비수기라 더욱 아주머니들로 이루어진 팀들.
유럽같은 느낌이 더 드는 구시가지다.
다니다 보면 자미도 있고 로마시대 유적도 있다.
private beach일까? 옛항구 쪽에서 찍은 좁고 폐쇄적인 해변이다.
이스탄불에서는 아직 추웠는데, 안탈리아는 이미 한낮엔 수영도 가능한 온도다.
옛항구라지만, 지금도 항구다.
대부분이 관광객들을 위한 유람선이지만.
저 성채는 어느 시대의 것일까. 누구로부터 무엇을 지키가 위한 것이었을까.
옛 항구의 성채에 오를 수 있는 엘리베이터와 전망대가 보인다.
생각보다는 제법 큰 안탈리아 구시가지다.
안탈리아는 나름 매우 번화한 큰 도시다.
구시가지에서 바로 연결된 번화가는 별 날이 아니어도 어마어마하게 붐빈다.
차가 다니지 않는 이 길은 양쪽으로 쇼핑센터, 레스토랑 등이 즐비하고, 사람들도 무척 많다.
구시가지를 다 돌고 늦은 저녁, 구시가지 바깥으로 돌면서 하드리아누스 문에 다다랐다.
그 옛날 황제와 귀족들은 이 먼 곳을 어떻게 다녔을까.
동로마의 유적이야 수도였으니 그렇다지만, 터키 곳곳에서 만나는 로마제국의 흔적들은 새삼 이탈리아에서보다 더 로마의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
다시 구시가지 안쪽으로.
저녁의 분위기 좋다.
공원의 아름다운 해질녘.
깜깜할 때 돌아올 걱정에 숙소에 가까운쪽 구시가지의 식당에서 먹을 생각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식당들이 안보이더니 카라알리오울루 공원의 식당들은 아예 닫고 있었다. 이러다 편의점 같은 데서 때워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히 숙소 거의 다 와서 큰 길가에 식당들은 제법 많이 열려 있었다.
간판에서부터 해산물이 전문이지만, 메뉴를 보고 있으니 다른 것도 된다고 말해줘서 들어왔다.
바람은 좀 불었지만 바깥에 앉아서 먹을만 했다. 공기가 상쾌하고, 분위기도 더 있다.
해산물은 좀 주문하기 어려워, 메뉴에도 없던 닭고기 요리를 시켰는데, 먹을 만 했다.
저녁 바람이 설레면서, 진짜 여행을 다니는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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