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timents/reading

멋진 신세계 (in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edino 2018. 11. 21. 00:13

아래 글은 모두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인용이다.

다만, 이탤릭 부분은 책 안에서 다시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야만인 존이 런던 사람을 선동해 통제 시스템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려 할 때, 시민들은 그의 외침에 무관심 한 반응을 보이지만 경찰은 그를 체포해 무스타파 몬드 앞으로 데려온다. 세계통제관은 존을 상대로 즐겁게 대화하는 중에, 만약 그가 계속해서 반사회적인 태도를 고집하면 격리된 곳으로 추방해 은둔자로 지내게 할 거라고 설명한다. 그러자 존은 세계 질서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견해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세계정부가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진실과 아름다움은 물론 인생에서 고상하고 영웅적인 것들마저 모두 제거해 왔다고 고발한다.

“친애하는 젊은이," 무스타파 몬드가 말했다. “문명사회에는 고귀함이나 영웅주의가 조금도 필요 없어요. 그런 것들은 정치가 비효율적 일 때 나타나는 증상이니까요. 우리처럼 적절하게 조직된 사회에서는 고귀하거나 영웅적일 기회가 없어요. 그런 기회는 사회 조건이 완전히 불안정해진 후에야 생길 수 있으니까요. 전쟁이 벌어졌거나, 충성의 대상이 나뉜 상황, 혹은 저항의 유혹이 있거나 싸워서라도 얻거나 지켜야 할 사랑의 대상이 있는 경우, 그런 곳에서는 분명히 고귀함이나 영웅주의가 어떤 식으로든 의미가 있겠지요. 하지만 요즘은 전쟁이 없어요. 오히려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누구라도 너무 많이 사랑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거지요. 충성의 대상이 나뉘는 일 따위도 없어요. 모두가 해야만 하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맞춰져 있으니까요. 사람 들이 해야 할 일들도 전반적으로 너무나 즐겁고, 숱한 자연스러운 충동들이 자유롭게 작동하도록 허용되는 것들이라서 사실상 거기에 저항하고픈 유혹이 없습니다. 그리고 어쩌다 운이 나빠서 불쾌한 일이 좀 일어날 경우에도 전혀 문제될 게 없어요. 언제든지 현실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해주는 소마soma(약물)가 있으니까요 소마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적과 화해하게 하며 인내심과 참을성을 갖게 해줍니다. 과거에는 엄청난 노력과 몇 년에 걸친 힘든 수양을 통해서 만 이런 것들을 이룰 수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0.5 그램짜리 알약 두세 알이면 됩니다. 누구든지 좋은 품성을 가질 수 있지요. 적어도 도덕성의 절반쯤은 병 안에 넣고 다닐 수 있습니다. 눈물 없는 기독교, 그게 바로 소마입니다.”


"하지만 눈물은 필요해요. 오셀로가 한 말이 기억나지 않나요? '폭풍이 지나갈 때마다 그런 평안이 찾아온다면, 바람아 불어다오, 죽음을 깨울 때까지,' 우리 마을의 나이든 인디언이 해준 이야기도 생각나는군요. 마트사키의 처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마트사키와 결혼하고 싶은 청년들은 여자의 집 정원에서 아침마다 괭이질을 해야 했습니다. 쉬워 보였지요. 하지만 마법에 걸린 파리며 모기들이 있었어요. 벌레들이 물고 쏘는 것을 대부분의 청년들은 견디지 못했지요. 하지만 단 한 명은 참아냈고 그가 처녀를 차지했습니다."


“멋지군요!" 통제관은 말했다."하지만 문명사회에서는 아침에 괭이질을 하지 않고도 아가씨를 차지할 수 있고, 쏘아대는 파리나 모기도 없어요. 몇 세기 전에 다 없애버렸으니까요."


야만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 없애버렸다."

"네, 어련하시겠어요. 불쾌한 것은 무엇이 됐든 참는 법을 배우는 대신 없애버리고 말지요. 포악한 운명의 투석과 화살을 참아낼 것인가, 아니면 시련의 바다에 맞서 싸워 끝장을 낼 것 인가, 어느 쪽이 더 고귀한 정신에 부합하는 것일까…… 하지만 당신은 어느 쪽도 아니지요. 견디지도 맞서 지도 않아요. 그냥 투석과 화살을 없애버리고 말지요. 그것은 너무나 쉽지요." 야만인은 말을 이어갔다. “당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끔씩 눈물을 동반하는 무엇입니다. 위험한 삶 속에 중요한 무엇이 있지 않을까요?"


“그 안에 많은 것이 있지요.” 통제관은 답했다. “남성과 여성은 가끔씩 부신에 자극을 받아야만 합니다 완벽한 건강의 조건들 중 하나지요. 그래서 우리는 VPS 요법을 의무화했습니다."


"VPS요?"


"격렬한 열정 대리 Violent Passion Surrogate의 약자입니다. 매달 한번씩 받는 정기 요법이지요. 신체 전반에 아드레날린이 넘치도록 합니다. 두려움과 분노를 생리학적으로 완전히 대행하는 거지요. 데스데모나를 살해하거나 오셀로에게 살해당할 때의 모든 강장 효과가 일어나면 서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불편한 것이 좋아요."


“우린 그렇지 않아요." 통제관이 말했다. "우린 무엇이든 편안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나는 안락함을 바라지 않아요.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사실상 당신은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거군요." 무스타파 몬드가 말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겠어요." 야만인이 도전적으로 말했다.


"늙고 추해지고 성 불능이 될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부족할 권리 몸에 이가 득실거릴 권리, 내일은 어떻게 될지 끊임없는 걱정 속에서 살아갈 권리, 장티부스에 걸릴 권리, 온갖 종류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 고문당할 권리는 물론입니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야만인이 말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무스타파 몬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좋을 대로 해요" 그가 말했다.


야만인 존은 사람이 살지 않는 황무지로 쫓겨나 은둔자로 살아간다. 수년 동안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살며 셰익스피어와 종교로 세뇌된 그는 근대의 모든 축복을 배격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너무나 이례적이고 흥미진진한 인물이 있다는 입소문이 삽시간에 퍼지면서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었고, 그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고 기록했다. 그는 곧 유명인사가 된다. 하지만 원치 않은 사람들의 관심에 지긋지긋해진 야만인은 문명화된 매트릭스에서 탈출한다. 그가 택한 방법은 빨간 알약을 삼킨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목을 매단 것이였다.
<매트릭스>와 <트루먼 쇼>의 제작자와는 달리 헉슬리는 바깥 세계로의 탈출 가능성에 의문을 품었다. 그런 식의 탈출을 감행할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와 자아가 매트릭스의 부분인 이상 매트릭스에서 벗어나려면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은 한번 탐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자아를 규정하는 협소한 틀을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21세기에 필요한 생존 기술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