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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송 추적 : 이동하는 모든 것의 인문학

edino 2018. 1. 16. 01:48

 

 

책은 크게 두가지 분야를 섞어 놓았다.
하나는 제목처럼 door to door 즉 물류의 세계, 다른 하나는 자동차의 세계.
물론 자동차가 물류의 큰 축이기는 하지만, 자동차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여러 문제들도 광범위하게 다뤄지다 보니 배송과 관련없는 주제들, 아니 관련없진 않지만 물류가 아니어도 자동차가 가지는 문제들이 많이 다뤄진다. 특히 교통사고 및 안전 등 자동차와 관련된 문제들은 독립적인 주제로 각각 따로 써도 되었을 것처럼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책의 소개를 보면 어떤 물건이 산지에서 소비자에게까지 오는, 그야말로 door to door의 세계를 차례대로 보여줄 것 같았는데, 그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예를 들면 1장은 스마트폰을 구매하였을 때 각 부품들이 얼마나 많은 거리를 여행하여 소비자에게 전달되는지, 2장은 알루미늄과 캔의 세계, 3장은 커피가 어떤 여정을 거쳐 소비자에게 오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것은 무엇인지 따위를 얘기한다.

그런 장들도 흥미롭다. 특히 알루미늄에 관한 얘기들이 재미있었는데, 이를테면 왜 어떤 음료는 알루미늄 캔을 쓰지 않고 양철캔을 쓰는지 이 책을 보고서야 알았다. (탄산음료와 같이 내부 압력이 높은 음료들만 알루미늄 캔을 쓸 수 있다.) 또 왜 알루미늄이 지구상에 얼마나 흔한 광물이며, 친환경적인 동시에 환경파괴적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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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흥미로왔던 부분은 역시 물류의 꽃과 같은 항구와 관련된 부분들이었다.
물론 이런 정도 읽은 것만으로 항구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그 넓은 바다를 느린 속도로 다니는데 왜 배들끼리 충돌하는 일이 아직도 일어날까? 꽤 고소득 직업이라는 도선사라는 직업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직업일까? 배가 그 넓은 바다에 얼마나 다닌다고 배의 배기가스가 문제시될까?

최신의 컨테이너선은 어마어마한 물건을 싣고도 열두명 정도의 선원으로 운항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항구에 가까운 지형지물은 여전히 사람의 경험에 의존한다. 아무리 노련한 선장도 수많은 항구 주변의 지형지물을 다 알기란 불가능하다. 도선사는 항구 근처에 온 큰 배에 올라타 마지막 구간의 운행을 돕는 역할을 한다. 날씨, 조류, 배의 선적량 등의 변수는 그 일을 늘 새롭게 만든다. 게다가 점차 대형화되는 선박은 그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컨테이너라는 혁명적인 발명에도 불구하고 항구는 항상 만원이다. 더군다나 컨테이너선이 대형화될수록 그러한 배를 댈 수 있는 항구는 한정적이다. 아무리 그 방식이 효율적이어도 점차 대형화되다 보니 컨테이너선의 컨테이너들을 내리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는 여전히 또다른 고소득 직업인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의존한다.) 이는 항구 주변의 만성적인 정체로 이어진다. 항구 주변에 넘치는 배들은 마치 붐비는 공항 주변처럼 모여 있기 때문에 사고가 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항구에서 내륙 쪽도 그 많은 컨테이너들을 나르기 위해 항상 붐비기는 마찬가지다. 또 배들은 배기가스 규제를 받지 않는 나라와 나라 사이를 다니기 때문에 가장 싸고 질낮은 벙커C유를 주로 쓰는데, 이들은 항구에서도 냉장/냉동 등 전기 공급을 위해 엔진을 켜둬야 하고, 이는 항구 주변 공기를 심각하게 오염시킨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생태학자 출신의 전 LA 항만청장은 항구에서 전기를 공급하고 정박중인 선박은 엔진을 끄도록 하는 등 많은 정책들로 항구 주변 환경 개선을 이루었다. 저항을 받지 않은 변화는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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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한 축, 자동차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자동차 관련 산업쪽을 좀 들여보다 보니, 항구에 비해 훨씬 익숙한 세계이기는 하나, 총체적인 문제제기 수준과 구성이 인상적이다.

우선은 그 비효율성. 나도 종종 자동차를 보며 생각한다. 집집마다, 혹은 사람마다 2t짜리 쇳덩어리 기계를 가지고 있다니. 혼자 차를 몰 일이 있을 때는 더하다. 100kg도 안되는 무게를 이동하기 위해 2t의 쇳덩이가 같이 움직여야 하다니. 게다가 내연기관의 비효율성은 전체 연소된 에너지의 20% 미만을 자동차가 움직이는 데 쓴다. 그게 2t짜리를 움직이는 데 쓰이는 에너지이니, 나를 옮기는 데 쓰이는 에너지는 1% 정도 밖에 안된다. 전기차 시대가 와야만 하고, 스마트 모빌리티가 필요한 이유다.

물류회사 UPS의 배송차량들은 갈 방법이 없지 않으면 어지간해선 좌회전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P턴 식으로 다소 돌아가는 경우가 있더라도, 좌회전을 기다리며 공회전 하는 것에 비해 많은 경우 더 친환경적이기도 하고, 엄청나게 많은 사고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안전. '15년 2월 13일, 13일의 금요일 하루 동안 미국 곳곳에서 일어난 수많은 교통사고 사례들을 제시하며, 교통사고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문제임을 명확히 한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미국 또한 교통사고 가해자들에게 상당히 관대하다. 사망사고를 내고도 감옥에 가는 비율은 놀랍도록 낮다. 누구나 운전을 하기 때문에, 누구나 운전자에게 감정을 쉽게 이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고들은 누구나 피하기 어려운 그런 실수들로만 일어나지 않는다. 음주나 스마트폰 사용 등의 부주의, 그리고 그로 인한 사고의 결과는 사실 덤덤해져선 안될 숫자들이다. 비행기나 배 사고는 물론이거니와, 전쟁과 비교해도 터무니 없이 많은 대량살상을 일으키는 것이 자동차다.

나 또한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고자 조금이라도 더 무거운 SUV를 샀다. 그리고 혹시라도 사고를 낼까봐 자동차 보험에 운전자 보험 옵션까지 들었다. 자율주행 시대가 와도 운전을 완전히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안전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따르자면, 대안은 역시 자율주행이다. 전면적인 ADAS 장착 의무화만으로도 많은 사고가 줄겠지만, 역시 최종 해법은 인간의 배제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운전하는 이동의 자유와 자동차의 감성을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 하겠지만, 안전에 관한 한 인간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운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사고에 대한 관대한 시선이 바뀌면, 인간은 컴퓨터에 운전석을 내주어야 할 것이다. 인간이 배제되면 충돌테스트 같은 일도 필요가 없고 자동차들은 훨씬 가벼워져도 된다. 도로에서 차간 간격은 훨씬 좁아질 수 있고, 파동으로 일어나는 정체 또한 상당 부분 줄어든다. 안전, 에너지, 공해, 시간, 비용, 주차 공간 등, 이 모두가 인간이 운전을 포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기꺼이 내어주어야 할 것이다.